솔직히 요즘 저는 정치분야 콘텐츠에 대한 묘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국내 정치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정리하는게 오히려 더 정치불신을 낳고 불쾌감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리적 위축’이랄까요. 최근 여야가 극한 대립 중인데 사람들이 분노도 공감도 아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걸 보면서 그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문제는 '국회, 그들만의 전쟁'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 같은데요. 1월 중순까지 필리버스터가 반복될 예정입니다. 듣똑러님 마음 속에 “국회가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라는 물음이 생기실까 해서 정리해봤습니다.
1. 국회는 오늘 본회의를 열고 공직선거법 개정안 표결을 시도합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내년 4월 총선 룰이 담겨 있어 모든 정당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입니다. 이번 개정안에는 "사표(死票)를 줄이고 민의를 더 반영하자"는 취지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데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 대안신당)가 합의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 개정안 자체를 반대해 지난 23일 밤부터 이 법안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50시간 동안 진행했습니다. 무제한 토론은 법안 당 1번 뿐이라 오늘 본회의가 열리면 이 법안은 바로 표결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2. 그럼 선거 룰이 어떻게 바뀌는지 볼까요.
준연동형비례제(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가 도입돼 연동율은 50%가 적용됩니다. 연동율이 적용되는 의석수(cap 캡)는 30석으로 제한되고요. 지역구 253석+비례 47석=총 300석이라는 현행 구성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논란이 됐던 석패율제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3. 앞일을 예상하려면 수학공식처럼 계산을 해야 하는데요(눈힘빡)
연동 배분 의석수를 구하고 이 숫자에 따라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쉽게(무소속없음을 전제하에) 예를 들어 볼게요.
(1) 거대당인 A당 정당 지지율이 40%라면, 300석의 40%는 120석입니다. A정당이 지역구에서 120석을 차지 했다면 추가로 연동율을 적용해 얻을 수 있는 의석은 없습니다. 정당 지지율에 따른 병립형 의석만 비례대표로 배정됩니다.
(2) 소수당인 B당이 정당 지지율 7%를 얻었다면 300석의 7%는 21석입니다. 만약 지역구에서 2석만 당선됐다면, 그럼 모자라는 의석 수(19석)에 연동율 50%를 적용해 9석을 비례대표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정당을 연동형으로 배분하고나니 그 숫자가 30석(캡)을 넘는다면 조정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4. 앞서 계산에서 보셨겠지만, 바뀌는 선거룰은 지역구 당선이 많은 거대양당은 약간의 손해를 보고 소수정당 득표를 보전해주는 방식입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반대해온 자유한국당이 "이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따로 만들겠다"고 선포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본인들이 비례대표 손해를 볼 바에야 위성정당(a.k.a 세컨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 정당 지지율을 얻고 비례대표를 가져가겠다는 전략입니다. 이같은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다른 정당들도 직간접적 영향을 받게됩니다.
5. 공직선거법 개정안 후폭풍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음 화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비롯한 검찰개혁법안입니다. 4+1 협의체는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이 법안(수정안)을 합의했는데요,
자유한국당은 '공수처를 믿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두고 자유한국당은 '필리버스터 2탄'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슬픈 사실은 앞으로도 계속 여야 ‘혈투 시즌2’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선거구를 정하기 위한
지역구 통폐합 작업을 해야 하는데요. 인구 하한선 기준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통폐합되는 지역구, 분구되는 지역구가 바뀔 수 있습니다. 소속 당 지역구 의원들의 생존 문제이기도 하고 내년 총선 판 유불리가 정해질 수도 있기에 치열한 샅바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지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