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듣똑러님
오랜만에 인사 드리는 것 같아요. 잘 지내셨죠?
무더운 여름밤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저의 낙은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은 원룸에서 잠들기 전 책을 잠시 뒤적이는 일이에요. ‘오늘도 잠깐이지만 책을 읽었다’는 자기위로 및 불면증 치료법으로 딱이거든요. 그러다 며칠 전 인상 깊게 읽은 책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가 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이었어요.
제목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스며있는 모든 ‘차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에 반대한다” 말하면서도 자신이 한 차별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고요. 책은 ‘그 사회에서 특권을 가진 집단일수록 각종 차별에 둔감하다’고 설명해요. 미국에서 인종차별 관련 설문조사를 하면 매번 흑인보다 백인이 훨씬 높은 비율로 ‘인종차별이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다’고 답하는 것처럼요.
차별에 둔감할수록 차별을 개선하려는 시도에 쉽게 반발합니다. 평등을 실현하는 각종 조치들이 곧 자기 권리의 손실로 다가온다고 느끼니까요. 여성 고용 할당제나 공공기관 고졸채용 목표제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늘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따라오듯 말이죠. 한 번은 작가가 수업시간에 장애인의 시외버스 탑승에 관해 토의를 한 적이 있다고 해요. 그때 한 학생이 이런 의견을 냈대요. “장애인이 버스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작가는 이 학생이 ‘기울어진 세계 위에 서서 공정성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표현했어요.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질서 속에서 바라보면 장애인의 버스 탑승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이고, 그러니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돈을 더 많이 내는 게 공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전 이 ‘기울어진 공정성’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차별과 갈등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젠더·장애·인종·성정체성·나이 등 사람을 구분짓는 수많은 잣대 속에서 우리는 차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돌변하기도 하죠. 평소에 전 ‘결정장애’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곤 했는데 이 말 역시 장애인에게 차별의 말이 될 수 있다는 걸 책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머리가 띵 해져 굳이 야밤에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노트와 펜을 꺼내 책 내용을 정신 없이 메모 했습니다.
언젠가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제 생각이 좀 더 단단해지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여러 차별을 주제로 방송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듣똑러님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이 이야기를 더 많은 분과 나눌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홍상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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